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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건국의 기틀을 다지다

전시명 :
풍납토성, 건국의 기틀을 다지다
기 간 :
2015년 03월 24일 ~ 2015년 05월 31일
장 소 :
한성백제박물관 기획전시실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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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전시를 열며

백제사람들이 처음부터 거대한 토성을 쌓은 것은 아니다. 1997년 현대연합주택부지에서 발굴된 3중 환호는 풍납토성을 쌓기 전에 환호를 방어시설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환호시설은 서기 3세기 중엽 이후에 매립 폐기된 것으로 보이며, 3중 환호 주변에서 같은 시기의 집자리들이 발견되었다. 풍납토성 안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삼화연립지구와 경당연립지구(경당역사공원)의 중하층 집자리, 그리고 미래마을부지의 원삼국시대 집자리들이다. 이로써 풍납토성을 쌓기 전에 3중환호로 둘러싸인 큰 환호마을이 같은 자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풍납토성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2011년 동쪽 성벽 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벽축조는 3차례 공정을 거쳤다. 맨 먼저 거대한 중심토루를 쌓고 나중에 안쪽으로 2차례 덧쌓는 방식으로 성벽을 완성하였는데, 3세기 후반에 첫 공사를 시작해 4세기 중반 이전에 1차 완공하였고, 이후 4세기 말과 5세기 중반에 2차례에 걸쳐 덧쌓았다고 한다. 고대의 노동방식으로는 풍납토성의 성벽 너비 43m, 최대 높이 13.3m, 둘레 3.5㎞의 거대한 토성을 쌓는 데에만 연인원延人員 138만 명 이상이 필요하다.

이처럼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려면 각종 자원을 집중하고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장악․관리할 수 있는 행정조직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풍납토성은 늦어도 4세기 무렵에 백제가 강력한 지배체제와 고도의 토목기술을 갖춘 강성한 고대국가였음을 증명하는 인류 문화유산이다.

Ⅰ. 역사의 물줄기, 한강

한수=한강은 한반도 중부지역을 가로지르는 큰 강으로서 주변에 너른 벌판과 서쪽 바다가 있어 사람이 생활하고 오가기에 좋은 곳이다. 그래서 한강유역에는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해서 살았으며, 그 역사 문화적 토대가 백제 건국의 기반이었다.

Ⅱ. 환호의 탄생

백제가 처음부터 웅대한 성곽과 왕궁을 갖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에는 한산 아래에 나무울타리를 세우고 민호를 옮겼다는 표현이 있어 초기의 위례성은 번화한 도시보다 주민이 많은 마을을 연상케 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고고학적 증거가 바로 ‘3중환호’이다. 나무울타리 흔적은 찾지 못했지만, 3줄의 깊고 긴 도랑구덩이로 안팎을 구분하려는 의도는 유적 전경에서 무엇보다 뚜렷이 드러난다. 3중환호로 둘러쳐진 백제 왕성의 초기 모습은 어떠했을까?

 Ⅲ. 왕성의 건설

3세기 말엽에 편찬된 중국역사서 삼국지에는 삼한지역 어딘가에서 이루어지던 성곽 축조장면 목격담이 적혀 있다. 이는 풍납토성 축조공사일 개연성이 있는데,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벌인 최대의 토목공사 현장에 중국인이 다녀가면서 남긴 기록이었을 것이다.

백제사람들은 3중환호를 메우고 그 바깥쪽에 흙으로 거대한 성벽을 쌓았다. 이로써 왕과 최고위 지배층이 사는 도시의 권위 및 군사방어력이 더 높아지고 튼튼해졌으나, 그만큼 많은 노동자와 기술자들이 동원되어 피와 땀을 흘려야 했다. 백제사람들은 4~5세기 백제 토목기술의 결정체인 풍납토성을 통해 당시 백제가 지닌 고대국가 역량과 통치체제의 기반이 매우 튼튼하였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개막식

2015. 3. 24. 화 15시

-뮤지컬 근초고 갈라쇼-

 

초청강연

풍납토성 기틀을 다지다 특별전시 초청강연 일정표

일자

주제

강연자

3월 26일(목) 14~16시

기록으로 본 풍납토성

노중국

4월 9일(목) 14~16시

환호의 탄생과 발전

이성주

4월 22일(수) 14~16시

3중환호마을의 풍경

권오영

5월 7일(목) 14~16시

경질무문토기에서 백제토기로

성정용

5월 21일(목) 14~16시

풍납토성 축성시기와 공법

이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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