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는 8호 적석묘의 성토층 및 하부 목관(곽)묘 확인, 12호 적석묘 남쪽 경계 확장, 1호분 주변 적석묘 성토층 및 하층 유구에 대한 정밀조사를 진행했다. 8호 적석묘에 대한 그간의 조사가 트렌치를 활용한 한정된 공간에 대한 면조사 및 평·단면 조사에 그쳤다면 2021년에는 교란에 의한 훼손이 덜한 성토층 일부를 하강하여 매장주체부를 탐색하기 위한 면조사 및 하부 조사를 진행했다. 또한 1호분 주변에서는 단위 적석묘의 축조 양상 파악 및 하층 목관묘 및 수혈 등에 대한 정밀조사를 병행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유구 현황은 다음과 같다.
구분 | 시대 | 유구 |
---|---|---|
2015∼2020년 |
백제 |
연접적석총(적석묘 28기, 매장의례부 3개소, 구획적석목관묘 1기, 연접부 14개소)·목관묘 4기·토광묘 2기·주거지 1기 |
조선 |
건물지 2기 |
|
2021년 |
백제 |
8호 적석묘 성토층 조사 및 하부 목관묘 5기, 1호분 주변 적석묘 성토층 조사 및 하층 목관묘 1기·토광묘 1기, 수혈 2기 |
총계 |
연접적석총(적석묘 28기, 매장의례부 3개소, 구획적석목관묘 1기, 연접부 14개소)·목관묘 10기·토광묘 3기·주거지 1기·수혈 2기/건물지 2기 |
[표 1] 유구 현황표
구분 |
시대 |
유구 |
2015∼2019년 |
백제 |
연접적석총(적석묘 13기, 매장의례부 3기, 구획적석목관묘 1기, 연접부 10기)·목관묘 4기·토광묘 2기·주거지 1기 |
2020년 |
백제 |
연접적석총(적석묘 15기 및 연접부 4개소 추가) |
조선 |
건물지 2기 |
|
총계 |
연접적석총(적석묘 28기, 매장의례부 3기, 구획적석목관묘 1기, 연접부 14기)·목관묘 4기·토광묘 2기·주거지 1기/건물지 2기 |
[2015∼2019년]
연접적석총은 다수의 중·소규모 적석묘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이루어진 거대한 적석총을 의미한다. 적석묘들은 직사각형의 연접부를 사이에 두거나 또는 직접 잇대어 연접되었다. 이들은 깬돌로 외곽을 쌓는 동시에 안쪽에 돌을 채우거나 흙을 쌓는 방법으로 축조되었다. 북쪽의 1호·4호 적석묘를 시작으로 동·서·남 세 방향으로 확장되었고 그 북편에는 묘역 경계시설이 가로 놓여 있다.
1호, 4호, 7호 등 주요 적석묘의 동편에는 상장의례를 거행했던 공간이 연접되어 있다. 1호 매장의례부에서는 막새를 비롯하여 수백 점의 기와와 토기들, 금 귀걸이, 달개 장식, 유리구슬과 같은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이 중에는 강한 화염을 입어 일그러지거나 흙덩어리와 녹아 달라붙은 것도 있다. 유물 속에서 높은 온도로 화장하여 파쇄된 사람뼈 조각들이 뒤섞여 나왔다. 인골은 총 4.3㎏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여러 명의 인체에 해당하는 양이다. 7호 매장의례부에서는 동일 부위의 뼈가 여러 점 씩 수습되기도 하여 화장된 인체는 최소 3개체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서울 석촌동 고분군 및 발굴조사 구역 전경] | [1호 적석묘와 매장의례부] | |
[1호 매장의례부 수막새] | [1호 매장의례부 암·수키와] | [1호 매장의례부 용도미상토제품] |
[1호 매장의례부 금장신구] | [7호 매장의례부 중국 청자] | [7호 매장의례부 화장인골] |
[2020년]
2020년에는 연접적석총의 8호 적석묘에 대한 추가 조사와 함께 시굴조사를 통해 유구가 확인된 1호분 및 A호 적석총 주변을 확장하여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8호 적석묘는 내부를 성토기법으로 축조하였는데, 동쪽 기단에 붙여 흙을 쌓기 시작하여 서쪽으로 경사를 이루며 높여 나갔다. 이 성토부 내에 매장주체부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150×250㎝ 범위를 구획하여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성토층 중간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깬돌과 토기편, 철못, 꺾쇠, 중국제 청자호, 대롱옥 등이 목탄과 함께 섞여 있는 면이 확인되었다. 이에 모종의 의례 행위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쪽 기단 아래에서는 지진구로 보이는 외반구연호와 광구장경호가 출토되었다.
1980년대에 발굴조사 후 정비된 1호분 및 A호 적석총 주변에서는 15기의 적석묘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이들은 1호분과 함께 모두 연접적석총의 묘역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져 백제 왕실 적석총의 새로운 묘제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 석촌동 고분군 발굴조사 구역 전경] | [새로 추가된 적석총] | |
[8호 적석묘] | [8호 적석묘 성토층] | |
[8호 적석묘 성토층 출토유물] | [8호 적석묘 지진구] | [세발토기] |
유구/유물 시대 | 유구 | 주요유물 |
---|---|---|
백제 | 도로(2), 주거지(1), 구상유구(1) 등 | 중국 육조 청자편·시유도기편, 고배, 삼족기 연가, 기대편, 완 등 |
통일신라 | 주거지(18), 우물(1), 도로(1) 등 | 호, 완, 대부완, 방추차, 쇠낫, 숫돌 등 |
조선∼근대 | 건물지 적심, 수혈건물지 | 기와, 백자편, 옹 등 |
몽촌토성은 한강의 바로 남쪽 강변에 위치한 백제 성터이다. 이 성터는 나지막한 언덕과 언덕사이의 낮은 골짜기를 흙으로 다져 쌓아 성벽을 만들었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약 2.4㎞에 달하며, 성벽의 높이는 당시 구지표를 기준으로 12~17m 정도이다.
이러한 몽촌토성은 오래전부터 그 중요성이 인식되어 1982년도에 국가 사적 제297호로 지정되었으며, 풍납동토성과 함께 백제의 초기 도읍지인 하남위례성으로 비정되기도 하였다.
몽촌토성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총 6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온돌 집자리와 저장시설인 저장구덩이, 연못 등 다수의 백제시대 유구가 발굴되었으며, 이와 함께 당시의 생활·문화상과 중국과의 교류를 엿 볼 수 있는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벼루·접시 등의 중국 청자(靑磁)와 동전문양이 새겨진 전문도기(錢文陶器), 금동제 허리띠장식 등의 출토는 몽촌토성이 백제 한성기의 왕성일 가능성을 제기하게끔 하였다.
(표 1) 1980년대 몽촌 토성 연도별 조사내용
년도 | 발굴지역 | 발굴기관 | 조사내용 | |
---|---|---|---|---|
유구 | 주요유물 | |||
1983 | 성벽4개 지점 | 서울대 박물관 | 해자, 목책 柱穴, 옹관묘 2 | |
1984 | 서북, 동북 동남, 서남 지구 |
서울대 박물관 숭실대 박물관 한양대 박물관 단국대 박물관 |
조선시대 건물지, 土壇, 외성 목책, 토광적석묘 3 | 통형기대, 동진 자기편 등 |
1985 | 성 내부, 문지 | 서울대 박물관 | 주거지 2, 저장구덩이 13, 토광묘 2, 옹관묘, 토광적석묘 등 | 직구호, 삼족기, 고배, 기대, ?帶金具, 뼈갑옷, 서진 전문도기. |
1987 | 동북지구 | 서울대 박물관 | 주거지 5, 저장구덩이 9, 옹관묘 1, 토광적석묘 1 | 중국 남조 자기벼루 조각, 백제연화문와당편 |
1988 | 동남지구 | 서울대 박물관 | 주거지 4, 저장구덩이 7, 적석유구 3, 생활면유구 1, 방형유구 1 등 | 삼족기, 蓋, 직구호, 난형토기, 심발, 광구장경호, 시루, 호, 옹, 기대, 廣口長頸四耳甕. |
1989 | 서남지구 | 서울대 박물관 | 적심건물지, 온돌건물지, 저장구덩이, 연못지, 판축대지 등 | 백제토기, 고구려토기, 기와, 수막새, 중국자기, 철기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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