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백제왕도 2000년의 꿈

궁(宮)명 토기 유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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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경제 보도자료] 2021.03.01. 몽촌토성-흙 속에 묻힌 2000년 백제의 시간들
등록일 2021-03-03 조회 669
담당자 전미정 담당부서 백제학연구소
연락처 02-2152-5954 이메일 baekje@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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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확장되었다. 올림픽경기장, 선수촌아파트가 들어섰고, 방이동과 오륜동 사이에는 드넓은 올림픽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의 경계가 동쪽으로 더 이동된 것이다. 이처럼 국가적인 행사를 개최하면서 도시는 한층 확장된다. 1986년 아시안게임 때는 잠실주경기장과 그 앞의 선수촌아파트가 들어서고, 2002년 월드컵 때는 서울의 서쪽이 발전된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올림픽공원은 넓은 초지, 연못, 제법 높낮이가 분명한 구릉을 품에 안으면서 서울 시민들이 애용하는 휴식 공간이 되었다.
이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몽촌토성이 그나마 보존된 것에는 사연이 있다. 잠실 일대를 개발하면서 하천을 메우기 위한 흙이 필요했고 해서 몽촌토성 언덕의 흙을 사용할 계획도 했었다. 이때 고고학자들이 이 일대가 위례성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해 보존하고 발굴된 것이다. 풍납토성이 다 무너지고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에 비하면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1984년 올림픽공원 착공과 함께 일대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약 3년간의 조사 끝에 백제 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면서 올림픽공원 안에 지금의 모습으로 몽촌토성이 보존되었다. 토성은 둘레 약 2.7㎞, 높이 6~7m로 경사진 모양이다. 몽촌토성 터에서 기와와 백제의 대표 토기인 삼족 토기 등이 발굴되었다. 또 석촌동 고분군을 비롯해 바둑판 모양 도로와 갑옷, 중국의 자기, 고구려 토기도 출토되었다. 당시 몽촌토성에는 인구 약 1만 명이 생활했다고 한다. 토성은 자연적인 비탈을 따라 성을 축조하고 목책과 성내천의 일부를 해자로 사용했다. 토성의 정상부에 오르면 송파구, 강동구는 물론이고 강남구 일부와 하남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정학적으로 매우 유리한 지역이었다.
우리는 서울을 조선 왕조 518년의 도읍지로 기억하지만, 그 이전 서울은 백제의 도읍지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왕 31명 가운데 21명이 이곳 한성 위례에서 즉위했고, 백제의 678년 역사 중 근 500년의 도읍지였다. 물론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궁이었고, 몽촌토성은 방어를 위한 외성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2016년 몽촌토성에서 매우 중요한 토기가 발굴되었다. 출토된 항아리 토기에는 ‘궁宮’ 자가 쓰여 있었다. 처음에는 이 글자를 ‘관官’ 자라 간주했지만 다시 검증한 끝에 궁 자로 판독이 가능해져 몽촌토성에 왕궁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었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6만 여 점의 다양한 유물들은 인근 한성백제박물관에 수장, 전시되고 있다. 발굴 당시 3~5m를 파야 유물이 나왔는데, 백제와 고구려는 물론이고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 역시 출토되었다.

인간의 삶의 흔적은 결국 흙에 묻히는 것. 그 흙의 두께만큼 시간은 과거로 흐르고 우리는 그것을 유물이라 부른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역사적 유물을 만들고 소비하고 또 물려주는 셈이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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