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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제의 발전 - 고이왕과 비류왕
등록일 2020-09-04 조회 474
담당자 전체관리자 담당부서 교육홍보과
연락처 02-2152-5800 이메일 baekje@seoul.go.kr

백제의 발전 - 고이왕과 비류왕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온조왕이 백제를 세울 때, 백제는 마한에 속한 작은 나라였던 걸 기억하시죠?

그 이후 백제는 안으로는 백성을 돌보고 왕권을 강화해나가고, 밖으로는 외부세력의 침입을 막고 외부세력을 정복해서 나라의 힘을 키워갔어요.

그리고 마침내 고이왕 때는 한강유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서쪽 바다까지 세력을 넓히게 되었지요.

그 당시 백제의 힘을 보여주는 예로 마한의 중심이었던 목지국을 제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일이 있어요.

또 마한의 왕들을 불러 백제의 저예군을 모아 사열식을 열어, 마한의 왕들에게 백제의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기도 했죠.

당시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을 바로 마한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는 의미로, 처음 마한의 50여개 국 가운데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백제가 이제 마한의 중심이 된 걸 뜻해요.

고이왕은 이렇게 외부로 힘을 넓히는 한편 나라 안을 다스리는 내치에도 힘썼어요.

무기 대신 농기구를 만들고, 남쪽의 늪지대를 논밭으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나눠주었죠.

또 가뭄이 들었을 때는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고 1년간 세금을 받지 않았어요.

그 덕분에 한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백제는 갈수록 커져갔어요.

그래서 수도를 넓히고,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튼튼한 성을 쌓았어요.

점차 신하들도 많아지고, 원활한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 관등제를 실행했어요.

그리고 신하들의 서열을 구별하기 위해서 서열에 따라 다른 옷을 입도록 명령했죠, 또 관리가 뇌물을 받으면 그 3배를 물게하고,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는 등 관리들의 규율을 강화했어요.

이러한 고이왕의 노력으로 백제는 중앙집권체제의 기틀을 마련하였어요. 그리고 백제의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왕이 바로 제11대 왕 비류왕이에요.

비류왕은 처음 온조왕자와 함께 고구려를 떠나온 비류왕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비류왕은 제 6대 왕인 구수왕의 둘째 아들로, 왕족이었어도 오랫동안 민간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실정을 잘 알아서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죠.

신하를 보내서 백성들의 고생을 살펴보고, 홀아비, 과부, 고아 등 외롭게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 중에서도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곡식을 나누어주었어요.

또 하늘에 제사지낼 때 쓰는 가축을 직접 잡는 등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했지요.

이러한 성정을 가진 왕이었지만, 왕위에 있을 때는 자연재해와 기묘한 천문현상과 같은 시련들이 끊이지 않았어요.

갑자기 나타난 메뚜기떼 때문에 농사를 망치게 되자,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었어요. 또 붉은 구름이 까마귀 떼처럼 끼어 해를 덮는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민심이 동요하기도 했죠.

비류왕은 나라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내신좌평은 북한성에서 반란을 일으켰죠.

그래도 비류왕은 계속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갔는데, 왕과 백성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바로 가뭄이었어요.

여러 차례의 가뭄으로 농작물들이 말라가고 백성들은 기근으로 고통받았어요.

그래서 비류왕은 저수지와 같은 수리시설을 만들겠다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지요.

수많은 인력과 시간을 들여 저수지를 완성하여, 가뭄이 들 때 농작물에 물을 공급하고, 홍수 때에도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게 되었지요.

여러 시련과 위기를 굳건하고 슬기롭게 헤쳐나간 비류왕 덕분에 한반도를 호령하는 백제로 나아갈 수 있었답니다.

다음이야기는 백제의 발전 - 근초고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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