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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왕궁

전시명 :
백제의 왕궁
기 간 :
2014년 03월 25일 ~ 2014년 06월 01일
장 소 :
한성백제박물관 기획전시실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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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2014 봄 특별전

백제의 왕궁王宮( Palace of Baekje) 

 

개막행사 

개막식 일시 : 2014.3.25(화) 15:00

개막식 초청 강연 : 2014.3.25(화) 13:00 

                            이형구(선문대학교) “한성백제 왕도 연구의 현황과 과제”

 

초청강연회

• 일시 : 2014.4.3(목)~2014. 5. 29(목)

• 장소 : 한성백제홀

백제의 왕궁 특별전시 초청강연 일정표
날짜시간주제/강사

4월 03일(목)

오후 2시

주제 : 한성백제 왕궁의 구조와 풍납토성
강사 : 신희권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4월 17일(목)

오후 2시

주제 : 한성백제의 왕궁과 미래마을
강사 : 소재윤 / 국립문화재연구소

5월 01일(목)

오후 3시

주제 : 한성백제의 왕궁과 경당지구
강사 : 권오영 / 한신대학교

5월 15일(목)

오후 2시

주제 : 백제의 궁궐건축
강사 : 이강근 / 서울시립대학교

5월 29일(목)

오후 2시

주제 : 백제의 목조건축
강사 : 김왕직 / 명지대학교

 

전시를 열며...

 서울은 백제의 5백년 왕도(王都)였다. 1997년부터 풍납토성의 땅 속 4m 깊이에 남아있는 백제 유적들이 발굴 조사되었는데, 그 중에는 왕궁의 일부로 추정되는 유구도 있다. 백제 왕궁의 나머지 부분은 지금도 건물 밑 땅 속에 남아있다. 백제왕실의 영광과 좌절을 품고서…

 

PART 1. 백제의 왕

"삼국사기"에 실린 백제의 왕은 온조왕부터 의자왕까지 모두 31명이다. 왕실 성씨는 부여씨(扶餘氏)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는 해씨(解氏)나 우씨(優氏)였다는 견해도 있다.

 

PART 2. 왕궁의 위치...어디에 있었나 

백제의 첫 도읍은 한강 남쪽의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었다. 위례성의 위치에 대해 오랫동안 논란이 많았으나, 풍납토성을 발굴조사하면서 학계의 의견이 모아졌다. 풍납토성은 전체둘레 3.5km, 성벽 높이 11m 이상의 초대형 평지성이며, 내부에서 대형 건물지와 최고급 백제 유물들이 속속 출토되었다. 특히 풍납토성 가운데에 위치하는 경당지구에서 발견된 건물지와 창고, 우물 등은 백제 왕궁의 시설 일부로 추정된다.

 

PART 3. 왕궁의 모습...어떻게 생겼나  

1. 중국과 일본의 왕궁 

중국의 전통적인 궁성제는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부터 형성되어 수(隋)․당(唐)나라 때 확립되었다. 중심도로를 중축선으로 좌우가 대칭하고 정무공간과 생활공간, 후원(後園)이 순서대로 배치되는 형태이다. 그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도 아스카(飛鳥)시대부터 나라(奈良)시대에 걸쳐 정무공간과 생활공간이 동일한 중축선상에 차례대로 배치되었다.

2. 백제의 왕궁

왕궁은 왕과 왕족, 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돌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중국의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에 따라 앞쪽에는 정무공간이 있고 뒤편에 생활공간과 정원공간이 위치했다. 백제는 고급 건축자재인 기와로 왕궁의 권력과 위상을 나타냈다.

[정무공간]

백제왕의 정무공간인 남당(南堂)은 궁궐 안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건물이었다. 주변에는 왕명출납, 숙위(宿衛)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관료들이 궐내각사에 배속되어 왕을 보필하였을 것이다. 풍납토성 경당지구에는 44호 건물지와 206호 우물 등 국가제사 유구가 밀집 분포한다. 44호 건물지는 시조에게 제사를 지내던 동명왕묘(東明王廟)로 추정된다.

[생활공간] 

왕궁의 가장 뒤편에는 왕족들의 생활공간이 위치했다. 왕의 숙소인 침전(寢殿)이 있고 주변에 궁중 음식과 의복을 공급하기 위한 수라간(水刺間)과 수방(繡房), 창고 등이 배치되었다. 백제의 왕실창고로는 제수용품을 보관하던 풍납토성 경당지구 196호 유구가 대표적이다.

[정원공간]

에 따르면 백제 궁궐 안과 남쪽에 연못(蓮池)이 있었다고 한다. 연못은 정원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요소인데, 풍납토성 안 영어마을 일대의 개흙층과 197번지의 석축 수로시설에서 백제 정원문화의 원형을 엿볼 수 있다.

 

PART 4. 왕궁의 사람...어떻게 살았나 

1. 왕(王) 

왕은 국가의 최고통치자로서 관리 임명, 군사활동, 인력 동원, 율령 반포, 민생 안정, 사신 파견 및 접대 등 다양한 정치업무를 수행했다. 하늘과 땅, 동명왕묘에 친히 제사를 지내며 내부 통합을 이끌었다. 때로는 왕궁을 떠나 직접 전쟁을 이끌거나 열병(閱兵), 사냥(田獵), 순무(巡撫) 등의 활동을 통해 국가 발전을 도모했다. 

2. 왕족(王族), 귀족(貴族), 관리(官吏) 

백제의 왕족들은 정치‧군사‧외교‧불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왕을 보좌했다. 왕비(王妃)‧후궁(後宮)‧태자(太子) 등은 왕궁 안에 거주했고 왕자․공주들과 다른 왕족들도 있었다. 주요 국정을 담당하는 좌평(佐平)에는 왕족이나 왕의 인척인 귀족들이 주로 임명되었다. 

3. 궁인(宮人) 

왕과 왕족들이 왕궁 안에서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돕는 궁녀(宮女)가 있어야 한다. 백제의 궁녀들은 왕을 시중들고 의복‧음식과 관련한 잡일을 맡았다. 왕궁을 방어하고 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일은 시위군(侍衛軍)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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