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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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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역사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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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 선사거주지는 약 6,000여년 전 우리의 조상인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유적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밝혀진 신석기시대의 최대 집단 취락지이다. 이 유적은 동남쪽의 구릉에 신석기시대 다음인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유적과 인접되어 있어 두 시대의 문화가 접촉하는 양상을 알려주며, 또 농경문화의 개시를 입증하여 주는 고고학적자료도 발견되어 한국선사문화의 추이를 밝히는 데 있어서 귀중한 유적이다.



돌로쌓아 주검이 안치되는 방을 만들고 입구와 통로인 널길을 설치한 분묘인 굴식돌방무덤이다.서쪽 언덕경사면에 4기(1,2,3,6호), 동남쪽 언덕에 4기(7,8,9,10호)가 있다. 무덤 방의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1ㆍ6호분 널길의 위치가 중앙형인 6호분, 널길의 위치가 남쪽 벽과 서쪽 벽에 붙어 있는 1호분이 있다. 천정의 형태는 돔형(궁륭형)인 1호분과 터널형인 6호분이 있고 방이동 1호분에는 시체 안치시설인 시상대가 설치되어 있다.



원래는 둘레 3.5km에 달하는 큰 규모의 토성이었으나, 1925년 한강의 대홍수로 일부가 유실되고 지금은 약 2.7km 가량만 남아 있다. 토성의 형태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타원형이며, 성벽은 고운모래를 한 층씩 다져 쌓았는데, 이는 돌이 없는 평야지대에 적합한 방법이다. 1999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동쪽 성벽을 조사한 결과 성벽의 아랫부분 폭은 43m였으며, 높이는 약 11m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동쪽 성벽 세 곳에 출입한 문터로 여겨지는 흔적이 남아있으며, 각종 토기ㆍ기와 등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출토되어, 백제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기 이전 시기에 축조한 돌무지무덤, 널무덤, 독무덤, 봉토분 등 토착세력의 무덤과 함께 시기를 달리하는 무덤들이 축조되어 있었다. 대형 널무덤은 하나의 널무덤 내에 몇 개의 목관을 안치한 구조이다. 돌무지 무덤은 지상에 돌을 쌓아 분구를 조성한 분묘를 말하는 것으로 석촌동 제3호분은 왕릉급 고분으로 기단을 갖춘 전형적인 고구려계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다.



아차산 주변에는 구의동보루, 시루봉보루, 아차산4보루 등 16개 정도의 고구려보루가 있는데 홍련봉보루(1보루)는 그중 규모가 큰 보루로 10여명의 군사가 주둔했을 것으로 보이며 고구려 기와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최상급 지휘관이 주둔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포곡식 석축 산성으로, 백제시대 북한산성과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6세기 중반 이후 신라가 한강유역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관방시설로 이용한 듯하다. 아단성으로도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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