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전시실은 한강에서 벌어진 백제․고구려․신라 3국의 각축과 한성함락 이후의 백제역사를 다루는 공간이다. 서울에 남아있는 고구려․신라 유적의 위치와 역사적 의미를 소개하고, 한성(서울)을 빼앗긴 뒤 웅진(공주)과 사비(부여)에서 국력을 다시 기르며 문화의 꽃을 피운 백제 후기 역사를 전시한다.
다시 강한 나라가 되다_한성에서 웅진으로 (다시 일어선 백제 / 웅진문화) / 문화의 꽃을 피우다_웅진에서 사비로 (사비문화 / 일본 속 고대 한국문화)
삼국, 한강으로
한반도의 중부지역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백제ㆍ고구려ㆍ신라가 치열하게 충돌한 곳이다. 한강의 주인은 백제-고구려-신라순으로 바뀌었다. 기원전 18년에 백제가 지금의 서울에서 나라를 세우고 493년 동안 최대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475년, 고구려가 서울을 빼앗고 551년까지 76년간 남방의 거점으로 활용하였다. 553년부터는 신라가 서울과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와 군사거점으로 활용함으로써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후 350여 년 동안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
한성, 그 후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서울)이 고구려의 공격으로 함락되자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겼다.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백제는 538년 다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겼고, 문화강국으로 거듭났다. 백제문화는 한국 고대문화는 물론 일본 고대문화 형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서울, 세계로! 미래로!
한성백제박물관은 2천년 전의 백제 역사를 빛내기 위한 박물관이 아니다. 그동안 서울시민이 잊고 지낸 서울의 고대 역사․문화와 그 의미를 되새기며, 그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박물관이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만나는 고대국가 백제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 4세기 후반 백제와 고구려가 치열하게 다투던 무렵, 국제사회는 백제-동진-가야-신라-왜국의 남방 국가연합과 고구려-전연의 북방 국가연합이 대립하였다. 고구려와 달리 백제는 어떻게 주변의 많은 나라들을 한데 묶어냈을까? 백제는 해양문화가 발전한 나라였다. 백제사람들은 서해 바다를 통해 중국, 일본, 인도를 오갔다. 국제교류는 백제 사회의 개방성과 다문화 성향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그래서 백제의 지배층은 조상이 서로 다르고 문화전통이 다른 사람들을 백제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게 할 수 있었다.
그들은 「통합의 리더」였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남북으로 갈린 우리에게 백제역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