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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박물관 상설전시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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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백제의 부활

박물관 로비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상징전시물은 풍납토성 성벽 단면이다. 아랫변 너비 약 43m, 높이 9~11m로 추산되는 풍납토성의 성벽 단면을 얇게 떼어내(이를 전사(轉寫)라고 한다) 전시 연출하였다.

박물관 로비 풍납토성 성벽단면 전시 사진(오른쪽)
풍납토성 성벽단면

풍납토성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3.5km이다. 이를 아랫변 너비 43m, 윗변 너비 15m, 높이 12m의 사다리꼴 흙 구조물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풍납토성 성벽을 쌓는 데 대략 1,075,200㎥~1,344,000㎥의 흙이 필요하다. 1,075,200㎥는 흙을 정돈하지 않고 마구 쌓아놓을 경우에 필요한 수치이며 1,344,000㎥는 흙을 잘 다지며 쌓을 경우에 필요한 흙의 양이다. 풍납토성은 잘 다져쌓은 토성이므로 체적 1,344,000㎥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15톤 덤프트럭(8㎥) 168,000대를 움직여야 하는 막대한 분량이다.

고대 중국에서 토성을 쌓을 때 한사람의 하루 작업량이 0.6㎥였다고 한다. 이를 풍납토성에 적용하면, 연인원 약 224만명을 동원해서 성벽을 쌓은 셈이 된다. 인부 1만명이 224일을 꼬박 일해야 하는 작업량이다. 과연 백제는 풍납토성을 1년만에 쌓을 수 있었을까?

박물관 로비 풍납토성 성벽단면 전시 사진(왼쪽)

4세기 무렵 백제의 전체 인구는 약 70~80만명이었다. 당시 백제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단기간의 전쟁에 3~4만명을 동원할 수 있었다. 군사 내지 일꾼은 보통 15세 이상의 건강한 남성이었으므로 1가구(5인기준)당 차출 대상자는 1~2인에 불과했으며, 그조차도 장정을 차출당한 집안 식구들의 생계 보전을 위해 이웃한 2~3가구의 장정을 차출하지 못하는 조건이었다. 백제로부터 1천여년이 흐른 뒤인 조선시대에는 군역에서 정병 1인당 2~3인의 봉족을 두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농기구가 상대적으로 부실했던 고대 백제의 경우에는 군역 혹은 노역에 장정 1인을 차출하려면 장정이 속한 해당 1가구는 물론 이웃한 3~4가구를 봉족으로 지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고대사회에서 하루 1만명 동원은 배후에 약 20만명의 지원을 전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풍납토성과 마을 그림

풍납토성 축조는 전쟁처럼 수개월만에 끝나는 일이 아닌데다 한정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공동작업해야 했으므로 하루에 1만명씩 동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하루 2천명씩 동원했다고 계산할 경우, 풍납토성을 다 쌓으려면 1,120일(3년)이 걸린다. 2천명이 1년을 꼬박 일하기도 물리적으로 어려울뿐더러 장마철, 한겨울 등 계절 영향까지 감안하면 풍납토성 축조에 대략 4~6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볼 수 있다. 2천명 동원의 배후에 약 4만명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4만명이 4~6년동안 꼬박 희생한 피와 땀의 결과물이 바로 풍납토성 성벽인 것이다.

 

페이지 담당부서 : 전시기획과담당자 : 지숙화주무관   

02-2152-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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