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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합뉴스 보도자료] 2021.08.29. 국내서 나온 고대 '논어 목간' 3점, 원형과 용도는
등록일 2021-08-30 조회 112
담당자 전미정 담당부서 백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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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시게루 교수, 봉황동·계양산성 목간 길이 1m 추정

"부여 쌍북리 목간은 학이편 본문만 적은 학습용"

인천 계양산성 출토 논어 목간
인천 계양산성 출토 논어 목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글을 적은 나뭇조각인 목간(木簡)은 고대 생활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목간은 화물 발송지와 도착지를 기록한 화물표 혹은 행정 문서 용도로 제작된 사례가 많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 이뤄진 발굴조사를 통해 유교 경전인 '논어'(論語)를 쓴 고대 목간 3점이 나왔다. 출토지는 각각 경남 김해 봉황동, 인천 계양산성, 충남 부여 쌍북리다.

29일 학계에 따르면 하시모토 시게루(橋本繁) 경북대 인문학술원 연구교수는 한국목간학회가 펴내는 학술지 '목간과 문자'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국내 고대 논어 목간의 원형과 용도를 추정했다.

하시모토 교수는 우선 현존 길이가 20.9㎝인 봉황동 목간과 13.8㎝인 계양산성 목간의 본래 길이는 1m가 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봉황동 목간은 4면으로 구성되며, 각 면의 폭은 1.5∼1.9㎝이다. 논어 제5편 '공야장'(公冶長) 일부가 남았다. 계양산성 목간은 변의 길이가 동일하지 않은 오각형으로, 각 면의 너비는 1.2∼1.9㎝이다. 봉황동 목간과 마찬가지로 공야장편을 적었다.

하시모토 교수는 두 목간 길이를 1m 이상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 "각 면의 공야장편 구절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타난다"며 "한 면의 마지막 글자와 다음 면의 첫 글자 사이에는 공야장편의 71∼91자 정도가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학자 자리잉(賈麗英)이 지난해 '정저우(鄭州)대학학보'에 발표한 논문에서 봉황동·계양산성 목간이 너무 길고 가늘어 1m를 넘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본 견해도 반박했다.

하시모토 교수는 "고려시대 청자를 운반할 때 길이 87∼134㎝, 폭 2.5∼3㎝, 두께 0.9∼1.4㎝인 나무를 포장재로 이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목간이 1m가 넘어 부서지기 쉽다는 의견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봉황동 목간과 계양산성 목간은 지름이 적어도 각각 2.42㎝와 2.69㎝는 된다"며 "2019년 경산 소월리에서는 길이가 74.2㎝이고, 지름이 2.8∼4.3㎝인 목간이 확인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리잉이 깎아낸 흔적이 뚜렷하고 글자가 고르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봉황동 목간 용도를 글씨 연습, 즉 습자(習字)라고 여긴 데 대해서도 "깎아낸 곳이 어디인지 명확하지 않고, 글씨는 제멋대로라고 할 정도로 흘려 쓰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봉황동 목간과 계양산성 목간은 모두 기다란 나뭇가지에 논어 본문을 충실히 적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하시모토 교수는 2018년 공개된 부여 쌍북리 목간을 논어 주석서와 비교하며 보기 위해 본문만 적은 자료라고 판단했다.

쌍북리 목간은 사면에 논어 제1편 '학이'(學而) 일부를 적었다. 유명한 구절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가 확인된다. 봉황동·계양산성 목간과 달리 각 면 사이에 누락된 글자가 적고, 구절이 계속 이어진다. 본래 길이는 30㎝ 정도로 추정된다.

하시모토 교수는 일본 효고현 시바(柴) 유적 출토 논어 학이편 목간을 검토한 일본 학자가 "당시 전적(典籍)은 본문 곳곳에 상세하고 긴 주석을 삽입한 두루마리 형태였기 때문에 본문을 읽기 불편해 목간에는 본문만 쓰고 그것을 텍스트로 참조해 주석을 읽었다"고 추론한 사용법을 소개했다.

이어 6세기 무렵 완성된 논어 주석서인 '논어의소'(論語議疏)를 살펴보면 본문과 주소(註疏·주는 경전을 해석한 글, 소는 주를 해석·부연한 글)의 글자 크기가 동일해서 본문과 주소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도 쌍북리 목간이 본문만 쓴 학습용 목간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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