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백제왕도 2000년의 꿈

궁(宮)명 토기 유물 사진

백제학연구소식

HOME > 백제학 연구 > 백제학연구소식

게시글의 상세내용을 제목, 등록일, 조회, 담당자, 담당부서, 연락처, 이메일, 첨부파일, 내용 등의 순으로 나타내는 표 입니다.
제목 [연합뉴스 보도자료] 2021.07.07. "무령왕릉 목관에 바닥판 없었다…관은 무덤 안에서 조립"
등록일 2021-07-09 조회 259
담당자 전미정 담당부서 백제학연구소
연락처 02-2152-5954 이메일 baekje@seoul.go.kr
첨부파일

국립공주박물관서 내일 발굴 50주년 학술대회…연구자 6명 발표

무령왕 부부 목관
무령왕 부부 목관

[국립공주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정확히 50년 전 공주 송산리고분군 배수로 공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된 백제 무령왕릉의 목관에는 바닥판이 없었으며, 관은 재료를 각각 무덤 안으로 들여와 조립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규동 국립중앙박물관 미래전략담당관은 8일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기념해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열리는 '무령왕릉을 다시 보다'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무령왕릉 상장례(喪葬禮) 절차'에 대해 발표한다.

국립공주박물관장을 지낸 김 담당관은 7일 배포된 발표문에서 "왕과 왕비 목관 모두에서 바닥판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출토 유물 재확인 결과와 관의 목재·부속 용구에 대한 설명을 담은 신보고서도 바닥판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김 담당관은 목관의 뚜껑과 옆면은 비교적 잘 남았으며, 쉽게 부패하지 않고 습기에 강한 일본산 금송에 옻칠을 해서 관을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는 바닥판은 애초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닥판이 없다는 견해의 근거로 "바닥판이 부패해 사라졌다면 이와 맞닿은 시상(屍牀, 시신을 안치하는 판)도 부패했을 확률이 높지만, 왕비 시상이 거의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다"며 "무령왕릉에서 수습한 못 1천279점 중에 바닥판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김 담당관은 고분 입구에서 무덤방에 이르는 길인 연도(羨道)가 높고 낮은 점에 주목해 '들어 나르는 관'이 아니라 '설치하는 관'이 사용됐다고 추정했다.

길이가 283.5㎝인 연도는 너비 102.9㎝, 최대 높이 147.4㎝이다. 무령왕 목관은 길이 267.5㎝, 뚜껑 너비 78㎝, 높이 104.1㎝이다. 목관이 연도를 통과한다면 양옆으로는 각각 12.4㎝ 정도만 남는다.

그는 "왕 목관은 255㎏, 왕비 목관은 226㎏이고, 옻칠과 관못·관고리 무게를 합치면 더 무거웠을 것"이라며 "목관을 든 채 길고 좁고 낮은 연도에 들어가기는 어려웠을 듯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무령왕과 왕비 목관은 빈장(殯葬, 시신을 바로 무덤에 묻지 않고 일정 기간 다른 곳에 안치하는 것) 장소에서 무덤 안으로 이동해 안치한 것이 아니라 매장지까지 옮긴 뒤 해체해 시신을 수습하고 안에서 다시 조립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고대사학회, 국립공주박물관, 공주대 역사박물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공동 주최하는 학술대회에서는 김 담당관을 포함해 연구자 6명이 무령왕릉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이병호 공주교대 교수는 그동안 학계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된 송산리 6호분의 명문(銘文, 금석에 새긴 글자) 벽돌(전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이 교수는 일제강점기 공주 유적을 마구잡이로 조사한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 '양관와위사의'(梁官瓦爲師矣)로 판독한 명문 벽돌을 국내 역사학계에서 이미 소개된 안에 따라 '양선이위사의'(梁宣以爲師矣)로 읽었다.

다만 그는 '양선'(梁宣)이 '양나라 사람 선'이 아니며, '양선' 자체를 인명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명문은 '양선이 사(師)였다' 혹은 '양선을 사(師)로 삼았다'를 의미하고, '사'(師)는 전문 기술자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봤다.

이 교수는 "명문 벽돌을 남조 양나라와 백제 교류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자료로 활용하면서 첫 글자를 양나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양이라는 성씨는 주나라 때부터 사용됐고, 양선은 벽돌을 제작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벽돌이나 기와에 새긴 짧은 명문에 과연 나라 이름까지 기재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심을 떨치기 어렵고, 벽돌을 제작한 사람과 무덤을 만든 사람을 구별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사임진년작'(士壬辰年作) 명문 벽돌의 '사'(士)도 기와를 만드는 '와박사'가 아니라 사람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정식 공주대 교수는 무령왕릉과 유사한 방식으로 만든 송산리 6호분에 대해 무령왕릉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축조했고, 피장자는 무령왕 장남인 순타태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학술대회에서는 이 밖에도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금동신발·관 장식, 일본 학계가 무령왕릉을 보는 시각에 대한 발표가 진행된다.

psh59@yna.co.kr

이전글 [한국고고학회 학계소식] 2021.07.08. 영암 내동리 쌍무덤 사적지정을 위한 학술대회 개최 2021-07-09
다음글 [연합뉴스 보도자료] 2021.07.12. 하남시 감일지구 백제역사박물관 2025년 건립 추진 2021-07-12

페이지 담당부서 : 담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