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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제 풍납토성> 서울 역사 2천년으로 확장한 타임캡슐
등록일 2016-05-26 조회 2067
담당자 전체관리자 담당부서 백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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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터 등 주요 지역 위주로 우선 보상…2020년 세계유산등재 목표 한성·웅진·사비 시대 잇는 백제역사문화지구 벨트 조성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2천년전 서울 한강 이남에 자리 잡은 백제는 약 500년간 화려한 한성시대를 보냈다. 그러나 풍납토성 등 왕성과 유물이 늦게서야 모습을 드러낸 탓에 백제하면 오히려 짧은 시기를 보낸 공주, 부여가 먼저 떠오른다. 

공주, 부여 일대 백제왕도 유적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먼저 등재됐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풍납토성 등 한성백제 유산을 등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미 인정받은 백제역사유적지구와 연계하는 방식이므로 가능성은 커 보인다.

한성백제까지 포함하면 고대왕국 백제에서 빠진 퍼즐 조각을 채우게 된다. 수도 서울 역사를 2천년으로 확장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서울시는 발굴과 보상에 속도를 내기 위해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주민 보상을 하기로 했다. 또 소중한 백제 유산 보전을 위한 주민 공감대를 확고히 다지는데 정성을 쏟고 있다.

하늘에서 본 풍납토성. 조은장 작가 촬영 [서울시 제공]
하늘에서 본 풍납토성. 조은장 작가 촬영 [서울시 제공]

 

◇ 기원전 18년 백제 한강 변에 건국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높은 빌딩이 가득한 메트로폴리탄이면서 2천년 긴 세월을 품은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흔히 떠올리는 서울의 과거는 조선 500년 왕도 '한양'이다. 그러나 이미 1천500년 전에 서울은 삼국시대 백제의 왕도였다. 백제역사 약 700년 중 전반기 500년이 서울 송파-강동구 일대에서 전개됐다.

삼국사기에는 온조가 기원전 18년에 백제를 건국한 것으로 기록된다. 백제는 고구려에 한강 유역을 뺏기고 공주로 도읍을 옮긴 475년까지 이곳에 터를 잡았다. 고대국가 체제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최전성기였던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는 서울을 중심으로 영토가 북쪽으로 황해도, 남쪽으로 제주도까지 이르렀다. 밖으로는 동아시아 해상무역 중심에서 주변국과 교류를 통해 문화강국으로 기능했다.

그 시기를 지나며 서울에 남은 백제왕도 유적이 왕성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왕실무덤인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 등이다.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인지를 두고는 오랜 기간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발굴 조사 결과가 나오며 일단락됐다.

백제는 한성이 함락되자 475년 웅진으로 천도했다. 쫓겨나듯 갔지만 무령왕 시절 국력을 회복하고 중흥 초석을 마련했다. 538년에는 다시 사비로 이동해 멸망하기까지 122년을 보냈다. 이 시기에 왜에 불교 등 여러 문물을 전파하며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문화제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문화제

 

◇ 풍납토성 발굴과 주민 보상

    서울 송파구 풍납동 한강 변에 있는 백제 초기 왕성인 풍납토성은 당시 비옥한 평야에 자리 잡았다. 한강을 따라 서해상으로 진출하기도 좋은 위치이다 보니 이 일대는 선사시대 이래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성벽 둘레는 원래 3천500m였다. 지금은 서벽은 대부분 유실되고 2천250m만 남았다. 유실된 구간도 지하에 기반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아랫변 너비는 43m, 높이는 아파트 5층 정도인 12m 이상으로 추정된다. 흙을 한 층씩 다져 쌓은 판축방식이다.

성벽을 쌓는데 총동원 인원이 2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당시 백제가 강력한 왕권을 갖췄던 것으로 분석됐다.

성 안팎에서는 왕궁과 관청, 창고, 건물, 살림집, 도로, 우물, 연못 등 흔적이 확인됐다. 토기와 기와, 중국자기, 꾸미개, 생활용구 등 유물 수십만 점이 나왔다.

풍납토성 경당지구 우물 바닥에 있는 유물
풍납토성 경당지구 우물 바닥에 있는 유물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토기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토기

 

    풍납토성은 유물 등으로 인해 일제시대부터도 관심을 받았고 1963년 사적 제11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보호 없이 대규모 개발 시대를 지나며 많이 훼손됐다.

그러다가 1997년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백제토기가 쏟아져나오며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1999년 동벽 절개조사에서는 풍납토성이 왕성임이 밝혀졌다. 평상시에는 풍납토성이, 전쟁 때는 몽촌토성이 왕성 역할을 한 것으로 정리됐다.

아파트 건설이 지연되자 불만을 품은 주민이 유적을 파괴하는 불미스러운 사건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오히려 풍납토성을 잘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대적으로 형성됐다.

서울시는 풍납토성 보전을 위해 주민 보상과 발굴을 본격 시작했다. 5천700억원을 쏟았지만 23년간 고작 38.2%를 매입하는 데 그쳤다.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 수십 년이 더 걸려도 끝날지 알 수 없었다.

이에 서울시는 2015년 '선택과 집중'으로 패러다임을 바꿨다. 왕궁터와 성벽 등 중요지역을 중심으로 기획 보상, 발굴하기로 한 것이다.

202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5년간 모두 5천137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국비와 시비로 2천855억원을 넣고 나머지 2천282억원은 지방채로 충당한다. 이 비용은 추후 문화재청이 지급한다. 

석촌동 고분군. 조은장 작가 촬영[서울시 제공]
석촌동 고분군. 조은장 작가 촬영[서울시 제공]

 

◇ 202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백제 '한성시대'는 후반기 공주와 부여, 익산에서 펼쳐진 웅진시대와 사비시대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때도 서울은 포함되지 못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되다 보니 동참하지 못했다.

서울시는 고대왕국 백제를 온전하게 세계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풍납토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존 백제역사유적지구와 연계해 확장 등재하는 방식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국가 전체적으로도 백제역사문화지구 벨트를 완성할 수 있다.

서울시로서도 역사의 폭을 조선왕조 500년에서 백제까지 2천년으로 확장하며 고도(古都)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가 난다.

서울시는 23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로드맵을 세우고 전담 조직과 민관 거버넌스를 꾸렸다"면서 "보상과 발굴 계획을 세우고 공주·부여 등 다른 백제 지역과 연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mercie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5/23 08:3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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