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과 함께 한성백제문화를 공존하고 공유하며 소통하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풍납토성 시유도기호 유물 사진

보도자료

HOME > 열린마당 > 보도자료

-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알려드리는 보도자료 관련 소식입니다.

게시글의 상세내용을 제목, 등록일, 조회, 담당자, 담당부서, 연락처, 이메일, 첨부파일, 내용 등의 순으로 나타내는 표 입니다.
제목 <백제 풍납토성> 백제史 가장 큰 마지막 퍼즐조각
등록일 2016-05-26 조회 1971
담당자 전체관리자 담당부서 백제학연구소
연락처 02-2152-5800 이메일 baekje@seoul.go.kr
첨부파일

수십년 공격받은 하남위례성설, 유적·유물 앞에 다수설 인정 토목기술부터 대외교류까지 백제 위상 보여주는 집약체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백제는 기원전(BC) 18년 서울 한강 변에서 건국한 후 660년 멸망하기까지 678년간 존속하며 2번의 천도를 단행, 3곳의 수도와 1곳의 별도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백제의 건국지이며 최고 전성기였던 근초고왕 시기를 포함한 전기 493년의 왕도가 바로 서울이다. 공주, 부여, 익산은 후기 185년 왕도의 역사가 담긴 곳으로 서울보다 훨씬 짧다.

그럼에도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지난해 서울보다 먼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유산 등재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처음으로 세계에 알리게 된 것은 성과지만, 백제사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서울 유적이 빠졌다는 점에서 미완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퍼즐의 마지막 조각인 풍납토성에 이목이 더 집중된다 .

◇ 수십년 진위 논쟁 속 최대 유적과 최고 유물로 입증 

    풍납토성은 1925년 대홍수로 삼국시대 청동초두 등 중요유물이 발견돼 왕성일 가능성이 논의됐다. 이후 1963년 사적 제11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오랫동안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방어성인 사성(蛇城)일 것이란 추정이 다수설을 차지해 하남위례성설은 빛을 보지 못했다.

1997년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백제 토기 다수가 출토된 후 이어진 발굴조사에서 성벽 3천500m 중 2천250m가 확인됐다. 왕궁, 관청, 창고, 건물, 집, 도로, 우물, 연못 등 유구와 수십만 점 유물도 나왔다. 그런데도 일부는 사성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왕성임을 입증할 수 있는 주춧돌 등이 부족하고, 한강 홍수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아니며 북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등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현재는 수막새와 토관 등 풍납토성만의 특수한 유물들이 발견되고, 한강 범람을 막기 위한 제방 성격의 토성 등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돼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 왕성이라는데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23일 "1999년 동벽 절개조사에서 풍납토성이 폭 43m, 높이 11m에 달하는 3.5km 이상의 국내 최대 판축토성으로 밝혀졌다"며 "이같은 토성 축조는 성벽을 쌓는 데만도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돼 백제 왕권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역사"라고 말했다.

풍납토성 축조 후 왕권 강화를 꾸준히 시도하면서 4세기께 전략적 요충지로 몽촌토성을 추가로 축조한 것으로 보는게 일반적이다. '북성'이 풍납토성, '남성'이 몽촌토성이라는 것이다.

석촌동 고분군. 조은장 작가 촬영[서울시 제공]
석촌동 고분군. 조은장 작가 촬영[서울시 제공]

 

◇ 토목부터 대외교류까지…백제史 타임캡슐 열 풍납토성

    풍납토성은 내부에서 16개 지점 26차례의 발굴조사와 성벽 내·외에서 180여 건의 소규모 시굴조사가 이뤄져 이곳에 백제 문화가 집약됐음이 확인됐다.

풍납토성 유물과 유적은 단순한 토목기술뿐 아니라 대외교류까지 한성백제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1999년 풍납토성 중앙부에 있는 경당지구 발굴조사에선 초대형 건물지, 토기만 1천점 이상이 폐기된 대형 구덩이, 왕실 식량 저장고 등이 발견됐다. 성곽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일반인이 아니라 왕과 최고귀족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한 구덩이에서 발견된 6천점의 기와, 화려한 연화문이 찍힌 전돌, 중국에서 수입한 시유도기, 도미와 복어 뼈 등은 화려한 귀족문화의 실상을 엿보게 한다.

경당지구에선 1천점 이상의 제기류, 10만 마리 이상의 소와 말 머리, 바닥에 채운 숯과 우물 등이 출토돼 제의를 중시했던 백제인의 정신세계와 왕실제사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미래마을 부지 발굴조사에선 고대 토목건축 기술 연구에서 중요한 발견들이 이뤄졌다. 초석을 갖춘 기와건물지와 정교한 도로들이 그것이다.

성벽 절개조사로 고대 성벽 축조기술인 판축공법과 부엽공법도 확인했다. 이 중 부엽공법은 성질이 다른 흙을 교대로 쌓아올리며 나뭇잎이나 줄기로 밀착도를 높인 축조기술로 중국과 일본에서도 볼 수 있다.

풍납토성은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권오영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충청지역에서 유입된 토기는 백제 내부의 교류, 호남이나 가야산 물품은 백제의 영역확장과 해상활동의 산물"이라며 "특히 중국 유물이 많은 것은 한성백제와 중국 간 긴밀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풍납토성 경당지구 44호 <<서울시 제공>>
풍납토성 경당지구 44호 <<서울시 제공>>

 

◇ 이번엔 무덤 주인 논쟁…캘수록 넘치는 이야깃거리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인지를 놓고 벌어진 논쟁이 마무리되고 추가 발굴과 연구가 진행되자 이제는 또 다른 토론 거리가 양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석촌동 고분군에 근초고왕릉이 포함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하게 이뤄진다.

석촌동 고분군은 1974년부터 1987년까지 본격적으로 발굴됐다. 여러 무덤 중 3호분은 한 변의 길이가 무려 50.8m에 이르러 고구려 장군총보다 크다. 4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제 청자편까지 발견돼 근초고왕릉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다음 달 3일에는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석촌동 고분군과 관련된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이와 같은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시기별 항공사진을 비교해 유적을 찾는 기법인 고지형 분석을 통한 최고지배자 핵심유적 기획발굴, 바로 옆 몽촌토성과의 연관성 해석, 공주·부여·익산 유적과의 '백제왕도 벨트 완성' 방향 등을 놓고 도 본격적으로 이야기 꾸러미가 풀리고 있다.

하늘에서 본 풍납토성.조은장 작가 촬영[서울시 제공]
하늘에서 본 풍납토성.조은장 작가 촬영[서울시 제공]

 

lis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5/23 08:31  송고

이전글 백제학 세계화 앞장…충남역사문화硏·한성백제박물관 협약 2016-05-02
다음글 <백제 풍납토성> 서울 역사 2천년으로 확장한 타임캡슐 2016-05-26

페이지 담당부서 : 담당자 :